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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종목 축구
경기장 아산신도시 물환경센터 축구장 , 아산 선장축구장 , 아산 선문대운동장 , 아산테크노밸리 축구장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식 축구의 보급은 1904년 서울의 관립 외국어 학교에서 체육과목의 하나로서 채택하면서부터이다. 한국 최초의 공개 축구 경기는 1905년 6월 10일 서울 훈련원(오늘날의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시합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 하에 경기에 필용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이다. 1921년 제1회 全조선 축구대회가 개최되고, 이어 1928년 5월 22일 조선심판협회(조선축구협회의 전신)가 창립됨으로써 한국에 정식으로 축구가 보급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1933년 9월 19일에는 조선축구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었고 초대 회장은 박승빈씨가 선출되었다.

특별한 장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구의 특성은 당시 가난했던 민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으며, 축구선수에게 필요한 굳센 체력과 강인한 투쟁심은 한국민의 정서와도 일치했다.

여기에 1929년부터 시작된 경성(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 대항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며 전 민족이 즐기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축구는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청량제였고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일제 말기 해산되었던 조선축구협회는 해방과 함께 1948년 9월 4일 대한축구협회로 개칭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동시에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했고, 1954년에는 AFC(아시아 축구연맹)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에 한국의 이름으로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발을 내딛었고 1954년에는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최초로 진출한 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8회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함으로써 아시아 최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되었다.